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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두빛 봄
꽃이 피고 지는 동안에 땅은 숨구멍을 열었고, 그 숨구멍으로 따뜻한 바람이 드나드니 어느새 버드나무에 여린 잎이 돋았습니다. 하늘과 땅의 약속이 릴레이처럼 펼쳐지더니 지리산의 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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새벽
물바람이 물안개 속을 거닐고 지나갑니다. 물보라 일으키는 여울로 다가갑니다. 물소리조차 갓밝이 세상에서는 고요합니다. 서늘한 가을 강, 시린 아침입니다. 지나가는 새도, 가끔 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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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얀 세상
좀체 기세가 꺾이지 않는 추위와 폭설이 나날이 이어집니다. 이곳에서는 섬진강 물이 얼면 된추위가 왔다 합니다. 그러나 대개 이삼 일이면 얼음이 풀리는데, 요즘은 섬진강 얼음이 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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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슴 찡한 큰절
마음이 심란하거나 침묵이 그리울 때 숲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. 내딛는 걸음만큼 생각이 사라지는 듯합니다. 오래된, 작은, 외진 절집에 가도 종교와 상관없이 그냥 마음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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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처님 생일상
아는 스님이 초파일날 아침상을 같이 들자고 해서 스님 도량으로 내려갔습니다. 서로 간에 마음을 내어 만나는 사이인지라 도량 가는 발걸음은 항상 가볍습니다. 도량 주인은 말과 행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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팔순 농군
허리 굽혀 풀 베고, 무릎 굽혀 잔돌 치워가며 당신의 논을 힘 없이, 쉼 없이 다니십니다. 돌 틈에 난 풀에 벌레가 ‘오글오글’ 붙어 있다고 마른 풀로 불사르고, 더러 축대 높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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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기처럼 한세월
구박을 피해 맨발로 데크에 나가 담배 한 모금. 몽실몽실 피어나는 연기, 산바람에 스러진다.아래, 절집에서 나는 목탁 소리가 크거니, 작거니, 앞서거니, 뒤서거니 숲을 쓰다듬는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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겨울나무
싸늘한 공기가 발목의 차가움으로 다가와 코끝이 쨍합니다.차가운 색온도를 끝까지 올린 푸른 하늘은 눈과 마음을 깊숙한 넓이로 들뜨게 합니다.겨울은 차갑고 아름답습니다. 갓 태어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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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란 봄소식
막 점심을 끝낸 노곤한 오후, 마실 삼아 동매 마을에 있는 ‘전업 총각’ 박남준 시인 집에 갔습니다. 박 시인이 전주 모악산에 살면서 애지중지 키우던 복수초가 악양의 볕 밝은 곳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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눈보라
장이 섰습니다. 둥근 연탄 화덕 탁자의 벌건 연탄불도, 비벼 대는 언 손들도, 주막집 아줌마의 맛깔스러운 반찬들마저 모두 부산합니다. 해장 막걸리에 들떠 떠들다 창밖을 보니 눈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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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어린이 책 BOOK] “산골서 몸 쓰며 사니 생각이 깊어지네요”
“도시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지만 시골에서는 어제를 돌아보며 오늘을 살아요. 그런 되돌아봄이 참 좋네요.” 귀농 10년차. 사진가 이창수(49·사진)씨는 편안해 보였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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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네 밴드
놀이는 즐겁습니다. 좋은 친구들과 같이 놀면 더 즐겁습니다. 두들기고, 튕기고, 불고, 흔드는 악기까지 끼어들면 놀이는 극상으로 올라갑니다. ‘동네밴드 겨울나들이’ 두 번째 공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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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화의 빛
나이 ‘오십’이면 장년도 중년도 지난 늙은이라 할 수 있습니다. 국어사전에 ‘중년’도 마흔 안팎이라니 ‘오십’이면 그냥 늙은이입니다. ‘늙은이’는 좀 거북하니 ‘중늙은이’ 정도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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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우리는 하동댁”
‘하나 되게 따뜻하게 위대하게 역시 하동!’ 표어를 달고 제27회 하동 군민의 날 행사가 열렸습니다. 죽어라 달리고, 힘껏 던지고, 함께 당기고, 순간 들어올리고, 정신 없이 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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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복을 주는 사람
그는 항상 바쁩니다. 홀로 지내는 그는 집 안팎을 바삐 오가며 쉼 없이 움직입니다. 그 집 마당에는 소꼴이 수북이 쌓여 있고, 처마에는 씨 옥수수가 매달려 있고, 수돗가에 놓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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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머니의 벌초
추석을 앞두고 마을 사람이 모여 ‘공동산’ 벌초작업을 했습니다. ‘공동산’은 연고 없는 묘가 많은 마을의 공동묘지입니다. 마을 조상님들이 계신 곳이라 이즈음에 한 번씩 깨끗하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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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판은 풍성한데…
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그리고 다시 가벼움으로-. 살아가는 것도, 계절의 흐름도 그런 것 같습니다. 봄에 시작한 가벼움이 가을의 무거움을 지나 겨울로 가고, 여린 초승달이 꽉 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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은어 낚는 맛
화개다리 근처는 긴 장대로 은어를 낚아채는 놀림낚시를 많이 합니다. 씨은어로 다른 은어를 낚는 놀림낚시는 방법이 치사하지만 기발합니다. 씨은어 꼬리에 낚시 바늘을 꿰어 은어 떼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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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 할아버지의 자신감
“KBS에서 왔어, MBC에서 왔어?” “아뇨. 노전마을 살아요.” “길거리에서 찍지 말고 저~우에 우리 감 밭에서 찍어. 금방이야.” 순하게 생긴 할아버지의 ‘저~ 우에’와 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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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비의 고장, 하동
하동향교 대성전에서 ‘춘기석전대제’가 열렸습니다. 석전대제는 우리의 삶 속에서 가르침을 주신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께 제사를 드리는 보은의식입니다. 보은사상은 여태 이어온 양반 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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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런 단풍의 매력
가을이 다 가도록 겨울 채비를 못했습니다. 지난해에 준비한 장작을 야금야금 없애다 보니 이제 바닥이 드러났습니다. 뒤늦게 마음이 급해져 땔나무를 찾을 겸 숲길을 걸었습니다. 찻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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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에서 곶감으로
지금 악양엔 집집이 곶감 깎기에 여념 없습니다. 품앗이처럼 돌아가며 깎든지, 품을 주든지, 친구들을 알음알음 모아 깎든지, 여하튼 지금 악양은 바쁜 늦가을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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진짜 임진년 새해
“해야 떠라 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. 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앳된 얼굴 솟아라.” 젊을 적 신나게 불렀던 노랫말에 나오는 그런 해가 떴습니다. 털모자에 장갑 꼭 끼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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슬픈 사랑의 꽃
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초가을에 비가 내렸습니다. 마을 근처 숲길에 ‘이제 가을이다’ 하며 꽃무릇이 피었습니다. 숲은 아직 녹색빛이 역력하기에 붉은빛 꽃무릇이 눈길을 확 잡아끕니